수동적으로 살지 말라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거나 믿음으로 산다는 말을 새기며 살다 보면
자칫 내 생각이나 판단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무엇인지 생각하고 기다리다 결정장애에 빠진 채로
우유부단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소극적이고 활동적이지 않는 삶을 살게 되는데
이런 모습은 절대로 성경적이지 않고 되려
마귀가 바라는 모습이라는 경고의 말씀을 해주시는 설교 말씀입니다.
2019.01.14 BBCI 설교- 김경환 목사
로마서 6:1-4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게 죽은 우리가 어떻게 더이상 그 가운데 살겠느냐?
3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 받은 우리가 그의 죽으심 안으로 침례 받은 것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와 함께 장사되었으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수동적으로 살게 되면 영적 전쟁에서 패배하게 되고 마귀에게 점령당하게 되므로
절대 수동적으로 살면 안 된다.
주님은 구원받은 자들이 죄의 종으로 살다가,
이제는 의의 종으로 살기를 원하시고 행하기를 원하지 수동적으로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침례를 Baptism 받는 것은 구원의 모형으로
죄 가운데 살던 삶이 물 속에서 죽고, 다시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죄 가운데 죽었다고 이 세상의 남은 구원받은 삶도 그렇게 죽은 듯이 산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1. 수동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수동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힘을 받아, 남의 의지로 조정되어 행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수동적인 사람들은 목표의식이 없다.
사람이 목표 의식이 없으면 죽은 것과 같고 남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열심히 살더라도 종의 형태로 하기에 성취감이 없고 즐거움이 없이 살게 된다.
사탄이 영적 전쟁에서 사람들을 수동적으로 만들어 점령하는 것이다.
사탄 마귀에게 틈을 주면 감정과 지성을 모두 장악하고 망쳐 놓을 수 있다.
스웨덴 노르웨이 뉴질랜드 등 잘사는 나라의 사람들이 자살률이 높은 것은
삶이 수동적이고 목표의식이 없기에 생을 쉽게 포기하는 것이다.
수동과 반대는 능동이다.
그리스도인은 능동적, 자기의 의지로 적극적으로 살아야 한다.
목표를 위해 열심히 자발적으로 즐겁게 일을 마무리 지으며 사는 것이다.
능동적인 것은 긍정적인 것과는 다르다.
모든 것을 좋게만 해석하고 적용하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Power of Positive thinking
사기꾼의 특성이며 마귀의 영역에 들어간다.
2. 그리스도인이 왜 수동적으로 살게 되었나?
1) 성경을 잘못 알기 때문이다.
로마서 6:11-13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정녕 죄에게는 죽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는 산 자로 여기라.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 안에서 군림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정욕 가운데 죄에게 순종하지 말고
13 또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내어 주지 말고, 다만 너희 자신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자들처럼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에게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의의 병기로 드렸다고 하는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다 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의지를 수동적으로 만들게 되는 것이다.
구원받았다면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서 행해야 한다.
하나님께 내 몸을 드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일이 이루어지도록 사용하시도록 하는 것인데
그런 모든 것도 결국은 자기가 행하여 이루는 것이다.
2) 구원 받은 자는 세상에 흥미를 잃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후에 세상의 악함으로 세상 삶에 흥미를 잃게 되기 쉽고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주신다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고 했다.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나가서 일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일을 통해 가정을 일구고
열심히 일을 해 선한 일에 사용하라고 하셨다.
베드로전서 3:3-4
3 너희는 머리를 땋고 금으로 치장하거나 옷을 입는 외모로 단장하지 말고
3:4 오직 마음에 숨겨진 사람을 썩지 아니하는 것 곧 온유하고 고요한 영으로 단장할지니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값진 것이니라.
온유하고 고요한 영은 육신이 설치지 않는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
삶을 단순화 해서 사회생활을 줄이라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고요를 가지고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싸워 나가야 한다.
깊은 마음 속의 고요함과 즐겁고 온유하고 겸손함으로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3) 많은 교리들이 수동적인 삶을 가르친다.
- 예정론을 가르치는 칼빈주의
전적 타락은 의지를 사용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자기의 의지로 좋은 것을 선택하고 결단하지 못하고
남들, 특히 거짓 목사들이 선택해주는 데로 따라 가게 만든다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의 의지로 선택과 결단을 하며 살라고 하신다.
구원받을 사람, 각 사람의 모든 삶이 예정되었다는 예정론과
자기 의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져야 믿는다는 교리로
자기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이 종교 생활을 하는 것이다.
숙명론과 일치하는 그들의 교리로 무의미하고 즐거움 없는 종교생활을 할 뿐이다.
- 혼의 구원을 외치는 워치만니
불교의 교리와 혼합된 교리로 자아소멸과 자기 포기를 말한다.
이를 믿는 자들은 자동적으로 수동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고
수동적인 삶이 박해받는 삶이고 이기는 삶이라 믿고 살아가는 것이다.
자기를 죽이고 모든 마음을 비우라는 교리는 불교나 요가의 교리와 같다.
마음을 비우면 사탄이 들어가기 가장 적합한 사람이 된다.
절과 마음수련회에서 마음을 닦는 사람들의 그 비워진 마음으로 사탄이 들어가 점령하는 것이다.
요가의 나라 인도의 수많은 잔혹한 성폭행과 강간 사건들은 그들의 정신이 어느 성향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 구원파
구원 받으면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해주시고, 죄도 짓지 않는다고 한다.
칼빈주의, 워치만니 등의 모든 누룩을 가지고 나온 것이 구원파이다.
- 초자연적인 현상을 쫓아가는 은사주의
귀신을 쫒고, 방언이나 눈에 보이는 초자연적 현상을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 착각하고
그런 것을 하는 거짓 목사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또한 은사주의자들은 하나님께 기도만 하면 다해준다고 믿고 가르친다.
나가서 싸우고 행할 때 이기고 얻게 도와주시는 것이지 하나님이 다 이기고 얻어다 주시는 게 아니다.
- 마태복음의 산상수훈 을 잘못된 시대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 마태복음 5, 6, 7장
산상수훈은 천년왕국, 왕국 복음과 관계있는 것이지 지금 교회 시대와 관련 있는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5:39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악한 자에게 저항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 뺨을 때리거든 다른 쪽도 돌려 대라.
마태복음 7:1 " 판단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라.
교회 시대의 영적인 사람, 즉 그리스도인은 모든 부분에서 판단해야 한다.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악과 선을 구분해 내고 악을 증오하고 대항해야 한다.
교회시대는 원수를 대적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셨고
왕국복음에서는 원수를 미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렇게 성경을 구분하여 배우지 못하면 잘못된 시대에 잘못된 교리로 살게 된다.
3. 해결책은 무엇인가?
1) 성경을 제대로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
2) 배운 것을 능동적으로 행해야 한다.
주님의 도움을 받아 자기의 능동적인 의지로
순종할 것은 순종하여 행하고, 멈출 것은 멈춰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의 선천적인 특성과 위배되는 것이 필요할 때라도
성령님의 힘을 빌어 적극적으로 행하며 살아가야 한다.
사무엘상 30:6
다윗이 심히 불안해 하였으니,
이는 모든 백성이 각자 자기 아들들과 딸들로 인하여 혼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고 말하였음이라.
그러나 다윗은 주 그의 하나님 안에서 스스로 용기를 얻더라.
지금까지는 성경을 잘못 알아 수동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 살았으나
이제는 악한 것에 대항하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능동적으로 자발적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를 기도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수동적인 삶은 마귀에게 점령당했다는 것을 알고
주님께 기도함으로써 새로운 마음 가짐으로
적극적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